




챕터 2 블라인드 데이트
레지나는 계속 걸어가면서도 필립의 말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놀랍게도, 그녀는 슬퍼할 틈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빨리 그곳을 떠나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아마도 오늘 날씨가 좋지 않아서인지, 늦은 밤에는 택시를 찾기 어려웠다. 레지나는 추위에 떨었고 어쩔 수 없었다; 바람이 그녀의 우산을 뒤집어 버렸다. 그녀는 폭우 속에서 길가에 서 있었고, 갑자기 강한 생각이 그녀의 마음에 떠올랐다.
떨리는 손으로 그녀는 전화를 꺼내 번호를 눌렀고, 차분하게 말했다. "신디, 우리가 얘기했던 세모나 씨와의 만남을 주선해 줄 수 있을까요?"
대형 중매 회사의 대표인 신디는 우연히도 레지나의 이웃이기도 했다. 레지나의 아름다움, 교육, 그리고 성격에 감명받은 그녀는 잠재적인 파트너를 소개하고 싶어 했다. 레지나는 이전의 여러 초대를 정중히 거절했지만,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언급했고, 신디는 기꺼이 도와주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왜 동의한 거야? 넌 항상 소개팅에 반대했잖아," 신디가 물었다. 레지나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아, 별거 아니야. 그냥 마음이 바뀌었을 뿐이야." 그녀의 할머니는 일흔이 넘었고, 고혈압과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 건강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레지나가 남자친구를 소개해주겠다는 약속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신디는 신속하게 행동했다.
다음 날 아침, 레지나는 더글라스 세모나를 만났다. 그녀는 차려입고 커피숍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매우 세련된 커피숍이었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은은한 향기가 그녀를 맞이했다. 레지나는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자신이 올바른 장소에 왔는지 의아해했다. 레지나는 신디가 소개한 남자가 괜찮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가 이렇게 뛰어난 엘리트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잘 맞춘 정장을 입고 있었고, 앉아 있는 상태에서도 그의 체격이 드러났다. 첫눈에 레지나는 그의 얼굴이 놀랍도록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레지나는 망설이다가 다가가 그의 맞은편에 앉아 부드럽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세모나 씨신가요?" 그녀는 그의 전체 이름을 기억하려고 했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남자는 눈을 약간 들어올리며, 깊고 냉담하며 수수께끼 같은 시선을 보냈다.
잠시 후, 그는 천천히 물었다. "날 기억하세요?" 그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친숙하게 들렸다. 레지나의 심장은 한 박자 뛰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혹적인 부드러움과 풍부한 질감을 지니고 있었다. 선율적인 음색에 예민한 감각을 가진 레지나는 특히 매료되었다. 대학 시절, 그녀는 더빙 클럽의 회원이었고 졸업 후에는 성우 일을 파트타임으로 하며 많은 라디오 작품을 녹음했다. 하지만 그의 질문은 조금 이상했다.
레지나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저는 신디가 소개한 사람이에요, 당신의 소개팅 상대요." 남자는 침묵에 빠졌고, '그녀는 나를 그렇게 빨리 잊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레지나의 잘못은 아니었다. 결국, 그는 공개적으로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온라인에서도 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몇 안 되는 그의 사진들도 그리 선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는 술에 취해 있었다. 방은 어두웠다. 레지나는 자신이 여기 온 목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직접적으로 말했다. "신디가 제 상황에 대해 말해줬을 거예요, 맞죠? 하지만 저도 직접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 이름은 레지나입니다. 스물여섯 살이고, 오리안트 출신이며, 노먼 대학교에서 외국어를 전공했어요."
또한, 그녀는 다양한 언어에 능통했고 높은 언어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센추리 그룹에서 일하고 있고, 최근에 상담사로 입사했어요. 그리고 파트타임 일도 두 개 하고 있어요. 지금은 차가 없지만, 오리안트에 타샤가 남겨준 아파트가 있어요. 제 부모님은 제가 여덟 살 때 이혼하셨고 그 이후로 새 가정을 꾸리셨어요. 저는 현재 타샤와 함께 살고 있어요. 그녀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아서 월 약 사백만 원 정도가 필요해요, 의료비와 간병인 비용을 포함해서요. 하지만 저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어요. 제가 결혼을 서두르는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타샤 때문이기도 해요. 그녀는 제가 결혼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해요."
레지나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앞에 있는 남자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그녀는 오기 전에 이미 충분히 생각해 둔 상태였다. 결혼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로, 거의 거래와 같았다. 협상인 만큼 모든 것을 명확히 해야 했다. 서로 맞지 않는다면 즉시 포기해야 했다. "저는 이전에 연애 경험이 있어요."
이 말을 듣고, 남자의 원래 무심했던 표정이 약간 변했다. 레지나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가 침묵하는 것을 보고 그의 생각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신경 쓰신다면 그냥 말씀해 주세요."
"신경 안 쓴다면요?" 그의 깊은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분했다. 그는 안정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레지나의 반응은 조금 느렸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약간 당황스러웠다.
잠시 침묵 후, 레지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신경 안 쓰신다면, 우리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도 결혼하고 싶어 한다고 들었어요." 레지나는 신디에게서 그의 상황을 들었다. 그가 스물아홉 살이고, 부모님이 모두 살아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오리안트 지역 출신으로, 사기업 임원이었다. 그가 소개팅에 참여한 이유도 가족의 재촉 때문이었다. 이것은 거래였다.
레지나는 그가 결혼 상대로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의 생각도 중요했다.
그가 미소 지었다. "그럼, 사랑은 필요 없으신가요?"
"딱히요." 자신의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아 약간 불편함을 느끼며, 레지나는 잠시 생각한 후 공손하게 말했다. "양쪽 모두 관계에 노력을 기울일 의향이 있다면, 미래에 감정이 생길 거라고 믿어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사랑에 관심 없어요." 레지나의 속눈썹이 살짝 떨렸지만, 그녀는 얼굴에 너그러운 미소를 유지했다. "그럼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레지나가 막 일어서려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 말은, 오늘 결혼합시다."
'바로 결혼한다고?' 레지나는 자신의 결정이 이미 충분히 대담하다고 생각했지만, 앞에 있는 남자는 더 과감해 보였다.
커피숍의 은은한 조명이 충격으로 약간 굳어진 그녀의 섬세한 얼굴 위로 떨어졌다. 그는 손끝으로 컵 가장자리를 만지작거리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두려우신가요?"
"당신이 저보다 더 조급해 보이네요?"
"그럼 계속 미루고 싶으신가요?" 그의 표정은 무심했고 어조는 차분했지만, 그것이 레지나를 약간 슬프게 만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 가족이 계속 재촉하고 있어서 짜증나요. 적합한 사람을 찾는 걸 미루고 싶지 않아요. 두려우시다면, 6개월 시험 결혼을 해볼 수 있어요."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레지나는 즉시 동의했다. "좋아요,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고 6개월 시험 결혼을 해봐요.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이혼할 수 있고요. 우리 결혼 소식이 공개되지 않는 게 좋겠어요, 그래야 나중에 당신이 다른 여자를 찾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 테니까.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우리가 헤어질 때 제 할머니가 알지 못했으면 해요."
그는 생각했다. '우리는 맞지 않을 수 없어.' 그는 오래전부터 모든 단계를 신중하게 계획하는 데 익숙해진 것 같았고, 자신이 내딛는 모든 발걸음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어나 그녀 옆으로 걸어갔다. 그는 키가 커서, 그녀를 단단히 감쌀 수 있는 벽과 같았다. "가시죠."
레지나는 잠시 멍해졌다가 천천히 일어났고, 둘은 커피숍을 나와 바로 시청으로 향했다. 그날도 비가 많이 내렸지만, 레지나는 전혀 흐트러져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내내 그녀를 위해 우산을 들어주어 비 한 방울도 맞지 않게 했다. 처음에는 완전히 순수한 이유로 그와 결혼한 것은 아니었고, 단 한 번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이 남자는 그녀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모든 절차를 마친 후, 레지나는 차 안에 앉아 결혼 증명서를 보며, 결혼 증명서에 적힌 남자의 이름, 더글라스 세모나를 응시했다.